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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쯤, 경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경매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500원에 사는데, 그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장에 가면 300원에 살 수 있는 그런 개념이였다. 즉 어찌되었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부동산 도매가였던 것이다. 기회가 있다고 말한건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받아가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본인이 그집이 꼭 마음에 들었거나, 향후 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시장 가격에 대한 조사가 잘못 되었거나 등등 의 이유) 그렇게 발을 들인 경매 시장 부동산이든 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기에, 서점에서 경매관련 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정리는 되지만,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이론일 뿐이였다. 그래서 남편과 고민하여, 경매 수업을 신청했다.
수강료는 650만원. 사실 그때만 해도 650만원이라는 돈을 보면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명품가방도 살 수 있으며, 심지어 몇 백개의 옷은 살 수 있는 비용.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돈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여행에 다녀온다고, 명품가방을 산다고 몇 백개의 좋은 옷이 있어도 부자가 되는 건 아니였다. 물론 잠깐의 만족감은 있었겠지만 그건 그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경매를 시작했고, 우리의 첫 걸음에는 '경매'가 있었다. 물론 그 바로 직전에 우리는 사이비 같은 '갭투자'코칭에 빠져서 이미 '700만원'을 날려본 상태였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해보고자한다. 다시 경매로 돌아와서, 우리가 수강한 경매 교육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글이 광고글로 변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자 한다. 좋은 강의이고 그만큼 값진 강의였다.
약 3개월 간은 경매물건을 고를 법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연습하고, 전화로 테스트를 받는다 물론 3개월이라는 과정은 짧게 줄일 수도 있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후엔 직접 입찰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여기서 입찰이라는 건 쉽게 말해서, 경매하는 법원에 가서 내가 그 물건을 사겠다는 의사로 입찰표에 원하는 가격을 써서 제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을 수강하면 좋은 점은 아직 내가 부동산을 보는 눈, 물건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강사에게 이 물건을 얼마에 써서 입찰하려고 한다는 걸 사전에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물건은 거제도 근처에 있는 아파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내가 왠 거제도냐 하겠지만, 그때 당시 강사의 마인드는 '돈 되는 물건이면 뭐든지 해라'였다. 지금에서는 그게 무슨말인지 알지만 그때는 그냥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 그것도 서울에서 5시간을 가야 나오는 곳의 아파트를 입찰하기 위해 준비했다. 입찰 바로 전날 우리는 입찰을 포기 했다. 아직 그 물건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게 가장 큰 이유에서 였고, 거리가 멀어서 자주 들여다 볼 수 없다는게 두번째 이유였다.
이후 다른 물건을 다시 검색하려니 김이 빠졌다. 그래도 나름 야심차게 준비해서 입찰하려고 한 물건인데 막판에 마음이 바뀌니 힘이 빠진건 사실이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집 근처를 노려보기로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서울이기에 서울은 모두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대출이 무주택자도 많아야 50% 밖에 나오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경매를 배우는 과정에서 규제가 된 걸로 기억한다. 아니면, 그 바로 직전이였든가) 그래서 서울은 자금 문제로 포기하고 경기도와 인천쪽을 봤지만, 그곳도 아파트는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결국 택한건 수도권의 빌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월세를 맞추면 시중의 예금이자와는 견줄 수 없는 수준의 수익률이 발생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100원으로 빌라를 샀는데 매달 1원이 나오고 1년에 10원이 나오면 연 10%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빌라들, 하지만 여전히 '돈이 되는건 무엇이든 해라'는 강사님의 마인드를 아직 따라갈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빌라를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빌라를 살더라도 역에서 가까워야 그래도 사람들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빌라들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내눈에 좋아보이면 다른 초보자들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 법,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수익률이 예금 이자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나오는 가격)으로 물건을 낙찰해갔다.
그렇게 3개쯤 연이어 물건을 낙찰 받지 못하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교육 기간이 딱 1년이였기 때문이였다. 물론 교육이 끝나도 어느정도 강사의 도움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 기간이 끝나기 전에 낙찰을 받는게 여러모로 좋을 듯 싶어서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한달에 두번 경매장에 간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낙찰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다시 강사의 마인드를 상기시키게 되었다.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해라'
우리는 다시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차로 2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이였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천안이였다. 당시 부동산 데이터 분석쪽으로 유명한 유투버가 정리해놓은 사이트에서 입주 물량이 적은데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자들이 많다는 분석결과를 보고 택한 지역이였다. 부동산에 전화해 보니 월세도 잘 들어오는 곳인데다가 살기도 괜찮은 동네라는 판단이 들었다. 남편과 주말이 되어 직접 천안으로 내려가보았다. 길 가던 오토바이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희 여기 이사오려고 하는데요. 살기좋은가요? 저희가 살다가 세놓으면 전세나 월세는 잘 구해지나요?"
"네 여기 근처에 공장이 있어서 사람도 많고, 누군가 나가면 바로 들어오고 그래요. 이 단지가 제일 살기 좋구요"
근처 부동산 사장님, 경비 아저씨, 주민들 그리고 청년까지 모두 분위기가 좋다며 칭찬이 일색이였고 실제 우리가 느낀 동네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입찰장에 갔다. 혼자 열차타고 버스타고 도착한 입찰장! 문득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이음아 우리 어제 쓸려던 가격보다 100만원 낮추자"
"그래"
무언가 남편의 촉은 언제나 정확했기에 따르기로 했다.
(본인 입찰시)입찰장에 가면 입찰용지와 보증금을 넣는 봉투 그리고 그 두개를 모두 넣을 큰 서류봉투를 나눠준다. 세개를 받아서 보증금을 보증금 봉투에 넣고 입찰 용지에 사건번호 인적사항 입찰가 등등을 차례로 적어 제출했다.
드디어 내차례, 앞에 나와있는데 앞에 서류를 정리하는 집행관이 내 서류에만 똥그라미를 친다. 1등이라는 신호였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1등 박이음씨" 침착하게 앞으로 나와서 1등의 징표이자 보증금으로 아파트 가격(입찰물건 가격)의 일부를 냈다는 영수증을 받았다.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아쉬운건 생각보다 더 싸게 쓸껄이라는 후회(?)정도 사실 객관적인 수익률을 보고 들어갔지만 사람이 결과를 보고 조금 낮출 껄하는 마음은 생길수밖에 없는것 같다.
물론 낙찰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낙찰의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가 진짜 해야할 일이다. 아파트를 본인 돈으로 사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금융기관의 힘을 빌린다. 즉 대출을 끼고 사는것이다. 가장 많은 대출을 빌려주는 곳을 찾아야 한다.(레버리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남의 돈으로 나오는 이자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월세 수익이 높으면 그걸로 된거다. 때문에 최대한 많이 빌려주고 이자도 낮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낙찰 후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전 소유자에게서 이 낙찰자로 물건이 넘어가도 되는지를 검토하고, 혹시 낙찰자가 물건을 살펴서 문제가 발견됬을 때 법원에 이 물건을 못사겠다고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보면된다. 나 또한 2주가 지나고 드디어 소유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법원으로 부터 몇월 몇일까지 집을 진짜 가져가기 위해서 돈을 내라는 지시가 우편으로 온다. 그러면 그 날짜 전까지 돈을 내면 끝이다. 이제해야 할 일은 알아본 대출을 실제 받기 위해서 서류에 싸인하고 필요서류를 제출한다. 보통은 법무사를 끼고 진행하게 되기 때문에 법무사가 혼자 잔금을 치르러 가거나 못믿겠으면 법원앞에서 만나서 같이 잔금을 치른다.
수강료는 650만원. 사실 그때만 해도 650만원이라는 돈을 보면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명품가방도 살 수 있으며, 심지어 몇 백개의 옷은 살 수 있는 비용.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돈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여행에 다녀온다고, 명품가방을 산다고 몇 백개의 좋은 옷이 있어도 부자가 되는 건 아니였다. 물론 잠깐의 만족감은 있었겠지만 그건 그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경매를 시작했고, 우리의 첫 걸음에는 '경매'가 있었다. 물론 그 바로 직전에 우리는 사이비 같은 '갭투자'코칭에 빠져서 이미 '700만원'을 날려본 상태였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해보고자한다. 다시 경매로 돌아와서, 우리가 수강한 경매 교육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글이 광고글로 변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고자 한다. 좋은 강의이고 그만큼 값진 강의였다.
약 3개월 간은 경매물건을 고를 법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연습하고, 전화로 테스트를 받는다 물론 3개월이라는 과정은 짧게 줄일 수도 있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후엔 직접 입찰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여기서 입찰이라는 건 쉽게 말해서, 경매하는 법원에 가서 내가 그 물건을 사겠다는 의사로 입찰표에 원하는 가격을 써서 제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을 수강하면 좋은 점은 아직 내가 부동산을 보는 눈, 물건을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강사에게 이 물건을 얼마에 써서 입찰하려고 한다는 걸 사전에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물건은 거제도 근처에 있는 아파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내가 왠 거제도냐 하겠지만, 그때 당시 강사의 마인드는 '돈 되는 물건이면 뭐든지 해라'였다. 지금에서는 그게 무슨말인지 알지만 그때는 그냥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 그것도 서울에서 5시간을 가야 나오는 곳의 아파트를 입찰하기 위해 준비했다. 입찰 바로 전날 우리는 입찰을 포기 했다. 아직 그 물건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게 가장 큰 이유에서 였고, 거리가 멀어서 자주 들여다 볼 수 없다는게 두번째 이유였다.
이후 다른 물건을 다시 검색하려니 김이 빠졌다. 그래도 나름 야심차게 준비해서 입찰하려고 한 물건인데 막판에 마음이 바뀌니 힘이 빠진건 사실이였다. 그렇다면 다음은 집 근처를 노려보기로했다. 그런데 우리집은 서울이기에 서울은 모두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해 법적으로 대출이 무주택자도 많아야 50% 밖에 나오지 않게 바뀌게 되었다. (경매를 배우는 과정에서 규제가 된 걸로 기억한다. 아니면, 그 바로 직전이였든가) 그래서 서울은 자금 문제로 포기하고 경기도와 인천쪽을 봤지만, 그곳도 아파트는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결국 택한건 수도권의 빌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고 월세를 맞추면 시중의 예금이자와는 견줄 수 없는 수준의 수익률이 발생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100원으로 빌라를 샀는데 매달 1원이 나오고 1년에 10원이 나오면 연 10%의 수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선택한 빌라들, 하지만 여전히 '돈이 되는건 무엇이든 해라'는 강사님의 마인드를 아직 따라갈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빌라를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빌라를 살더라도 역에서 가까워야 그래도 사람들이 몰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빌라들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내눈에 좋아보이면 다른 초보자들 눈에도 괜찮아 보이는 법,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수익률이 예금 이자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나오는 가격)으로 물건을 낙찰해갔다.
그렇게 3개쯤 연이어 물건을 낙찰 받지 못하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교육 기간이 딱 1년이였기 때문이였다. 물론 교육이 끝나도 어느정도 강사의 도움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 기간이 끝나기 전에 낙찰을 받는게 여러모로 좋을 듯 싶어서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한달에 두번 경매장에 간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낙찰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다시 강사의 마인드를 상기시키게 되었다.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해라'
우리는 다시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차로 2시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지역이였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천안이였다. 당시 부동산 데이터 분석쪽으로 유명한 유투버가 정리해놓은 사이트에서 입주 물량이 적은데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자들이 많다는 분석결과를 보고 택한 지역이였다. 부동산에 전화해 보니 월세도 잘 들어오는 곳인데다가 살기도 괜찮은 동네라는 판단이 들었다. 남편과 주말이 되어 직접 천안으로 내려가보았다. 길 가던 오토바이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희 여기 이사오려고 하는데요. 살기좋은가요? 저희가 살다가 세놓으면 전세나 월세는 잘 구해지나요?"
"네 여기 근처에 공장이 있어서 사람도 많고, 누군가 나가면 바로 들어오고 그래요. 이 단지가 제일 살기 좋구요"
근처 부동산 사장님, 경비 아저씨, 주민들 그리고 청년까지 모두 분위기가 좋다며 칭찬이 일색이였고 실제 우리가 느낀 동네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입찰장에 갔다. 혼자 열차타고 버스타고 도착한 입찰장! 문득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이음아 우리 어제 쓸려던 가격보다 100만원 낮추자"
"그래"
무언가 남편의 촉은 언제나 정확했기에 따르기로 했다.
(본인 입찰시)입찰장에 가면 입찰용지와 보증금을 넣는 봉투 그리고 그 두개를 모두 넣을 큰 서류봉투를 나눠준다. 세개를 받아서 보증금을 보증금 봉투에 넣고 입찰 용지에 사건번호 인적사항 입찰가 등등을 차례로 적어 제출했다.
드디어 내차례, 앞에 나와있는데 앞에 서류를 정리하는 집행관이 내 서류에만 똥그라미를 친다. 1등이라는 신호였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1등 박이음씨" 침착하게 앞으로 나와서 1등의 징표이자 보증금으로 아파트 가격(입찰물건 가격)의 일부를 냈다는 영수증을 받았다.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아쉬운건 생각보다 더 싸게 쓸껄이라는 후회(?)정도 사실 객관적인 수익률을 보고 들어갔지만 사람이 결과를 보고 조금 낮출 껄하는 마음은 생길수밖에 없는것 같다.
물론 낙찰의 기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낙찰의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가 진짜 해야할 일이다. 아파트를 본인 돈으로 사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금융기관의 힘을 빌린다. 즉 대출을 끼고 사는것이다. 가장 많은 대출을 빌려주는 곳을 찾아야 한다.(레버리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남의 돈으로 나오는 이자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월세 수익이 높으면 그걸로 된거다. 때문에 최대한 많이 빌려주고 이자도 낮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낙찰 후 2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전 소유자에게서 이 낙찰자로 물건이 넘어가도 되는지를 검토하고, 혹시 낙찰자가 물건을 살펴서 문제가 발견됬을 때 법원에 이 물건을 못사겠다고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보면된다. 나 또한 2주가 지나고 드디어 소유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법원으로 부터 몇월 몇일까지 집을 진짜 가져가기 위해서 돈을 내라는 지시가 우편으로 온다. 그러면 그 날짜 전까지 돈을 내면 끝이다. 이제해야 할 일은 알아본 대출을 실제 받기 위해서 서류에 싸인하고 필요서류를 제출한다. 보통은 법무사를 끼고 진행하게 되기 때문에 법무사가 혼자 잔금을 치르러 가거나 못믿겠으면 법원앞에서 만나서 같이 잔금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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